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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나의 나이는 마흔이다.

의심이 없어지고, 세상사물의 이치를 터득하게 된다는 그 불혹의 나이.

지금도 글을 쓰면서 벌써 그런 나이가 되었나 싶다.

마음만은 청춘인데 


마흔살이 지나가기 전에 뭘 해볼까 고민하다가

1. 대학원에서 공부해보기

2. 마라톤 10Km 도전해보기


이 두가지를 올해 계획으로 세웠는데 하긴 다 했거나 하는 중이다.


첫번째 마라톤은 조선일보가 함께 한 서울하프마라톤대회.

어떠한 준비도 없이 그냥 전경생활했을 때 방독면 마라톤과 구보를 했던 기억을 

더듬어서 무작정 참가.


완주에는 성공, 1시간 3분여의 기록으로 대만족.

덕분에 무릎과 정강이에 깊은 통증이라는 선물을 얻고 3일은 어기적거렸다.

1시간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는 아쉬움(왜 아쉬웠는지 대체..)으로

한번만 더 해보고 그만하자는 심정으로


바로 뒤이어 참가접수를 받았던 JTBC서울마라톤에 또한번 무모한 도전.

그렇게 뛰게 된 인생 두번째 마라톤을 바로 그저께 일요일에 했다.


두번째 마라톤 역시, 준비없이 달려들고 말았다.

아니다, 장비를 준비했다. 무릎,발목 보호대.

아픔은 오래남는다 했던가, 첫번째의 무릎통증이 불현듯 스쳐지나가서

의식의 흐름대로 대회 전날 STAR무릎보호대를 구매했다. (농구용품 아닌가??ㅋㅋ)


새벽 4시50분에 기상해서 토스트 두 조각 먹고,

대충 짐 꾸려서 잠실종합운동장역으로 출발~

날씨가 생각보다 추워서 환복과 짐맡기기를 언제할지 꽤 고민했었다.

입김이 나올정도로 추웠다. 무릎보호대가 따뜻했다.

뭐 아무런 준비도 안했는데, 괜시리 어기정대면서 몸푸는 척하며

다양한 참가자들을 관찰했다. 개인적으로 난 이게 꿀잼.


마라톤을 하러 온건지, 몸매자랑을 하러 온건지 모르겠는 청춘 남녀들,

누가봐도 선수처럼 깡마른 몸매에 가벼운 복장으로 신기록수립을 벼르는 4,50대 아저씨들(아! 나도 이제 여기에 속하는건가),

달리기가 좋아서 모인 다양한 러닝클럽들.

목적이 어떻든간에 새벽을 뚫고 나와서 운동을 하겠다는 마음들은 건강해보여서 보기 좋았다.


출발전에 방송인(?) 운동선수(?) 양정원님이 스트레칭을 주도하셨는데,

조선일보때보다 훨씬 집중력있게 이끌고, 실제 동작들도 재밌었다. 

JTBC 손석희 사장님의 자칭 아들로 불리는 장성규 아나운서의 말솜씨와 톤도 수준급이라 놀랐다.

위트도 있고, 무엇보다 새벽에 쳐질 수 있는 분위기를 올리는데 적절한 캐스팅이 아니었나 싶다.

그밖에 셀럽들로는 소유, 션, 오세득, 미카엘, 기욤패트리, 임수향, 박원순 시장님 등이 자리했다.

시작하는듯해서 출발선에서 몸을 슬슬 풀고 있는데, 추워서 그런지 체온조절을 위해 화장실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불안한 마음으로 곧 시작할것 같으니 뛰면 땀으로 배출되겠거니 하고 버티고 섰다.

아...할듯할듯하면서도 여전히 출발을 하지 않는다.

참가자가 2만에 가까운 큰 대회라서 그런지 호락호락하지 않다. 참아본다.

1시간 같았던 10분을 더 기다리니 출발이란다. 난 이미 급해졌다.

스타트와 동시에 화장실을 찾느라 지하보도로 내려갔다가 꽝.

다시 코스에 진입해서 뛰다가 여러명이 옆길로 새는 걸 보고 저기다 싶어서 따라서 이탈.

지구대 화장실이 개방되어 있었다. 지저스~ (다시한번 감사합니다. 절 살리셨어요.)

한결 가벼워진 상태로 다시 코스 진입. 이미 리듬은 다 깨졌고(원래도 없긴했다) 한시간 진입에 대한 희망이 날아갔다.

그래도 끝까지는 뛰자는 의지로 페이스를 찾아가려고 안간힘을 썼다.

이어폰에서는 GOD의 애수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쭈니형님의 굵은 래핑이 진행되고 있었다.


근데 갑자기 왼쪽 인도에 주황색 옷에 노란머리, 선글라스의 구리빛 피부의 쭈니형이.....형이 왜 거기서 나와??

타이밍보소. '화이팅~!!' 을 외쳐주는 쭈니형님(가슴엔 참가번호가 있었으나, 자세와 표정, 목소리 모두 전혀 뛸 생각이 없어보였고

뛰지 않아도 된다고 누가 얘기해줘서 행복한 상태로 응원해주고 있던 느낌)이 가장 재미있었던 순간이었다.


달리는 도중에 느낀 5가지만 적어놓고 싶다.

1. 한강의 대교들은 어디든 살짝 오르만이 있어서 겁나 힘들다.

2. 내 앞사람이 참 거슬렸고, 비켜서 지나가는데 체력 소모가 상당했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그런 걸림돌 중 하나였을 듯 ㅋㅋ 미안했습니다.

3. 두둥실 떠다녔던 페이스메이커들의 풍선은 지금 내가 어느정도인지를 알려주고 목표를 제시해주기 위한 선의의 목적이었겠으나,

   한편으로는 엄청난 좌절감을 안겨주었고 빠른 포기가 가능했다.

4. 10km는 5Km 지점 즈음에 음수대가 있긴 했는데, 굳이 안 마셔도 되었다. 

5. 코스에서 가장 힘이 빠지고 미치겠는 구간은 U턴 얼마 전이다. 나와 반대방향으로 먼저 가는 사람들을 보니까 훨씬 더 힘들어진 느낌이었다.


아무튼 최선을 다한 것 같지는 않지만, 무사히는 레이스를 마쳤다.

결과는 1시간 9분, 첫 대회보다 6분이 늦어졌다. (그노무 화장실....ㅋㅋ) 

아쉽지만 선뜻 다음에 다시 한시간 진입을 도전하겠단 이야기가 나오진 않는다.

도착해서 기념메달, 바나나, 초코파이, 초코바, 캔쥬스, 소보로빵을 받아들고 게눈 감추듯 헤치우고

기념촬영따윈 쿨하게 건너뛰고 집으로 바로 귀가해서 뻗어 잤다.

훈련은 안했으나 무릎보호대의 준비성으로 다행히 다음날인 어제 걸어다니는데는 큰 무리는 없었다.


과연, 또 도전을 하게될지가 나도 궁금하다.

새벽 찬공기, 2만여명의 사람들, 거칠었던 호흡소리, 전기오른 느낌으로 조여온 무릎보호대, 묵직했던 메달 그런 것들이 아직까진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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