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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아워는 현재 아주대학교병원 외상외과 과장이자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장으로 재직하며 국제 표준에 맞는 중증외상 의료 시스템을 우리나라에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국종 교수의 경험과 기록을 담고 있는 책이다.

총 2권으로 1권은 2002~2013년까지 "사람을 살리는 것, 그것이 우리의 일이다." 단 한 생명도 놓치지 않으려는 이름 없는 사람들의 분투라고 소개한 중증외상이라는 분야를 시작하게 된 배경과 선진국의 시스템을 배워와서 옳은 일이기 때문에 교과서대로 기본원칙대로 해나가려 하나 여러가지 어려움을 만나고, 그럼에도 환자를 살리겠다는 의료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로서 끌고나가는 모습들이 담겨 있었다. 가장 유명한 일화인 아덴만 석해균 선장 구출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알게 되었다.


2013~2018년 까지 "막을 수 있었던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고도 왜 우리는 변하지 못하는가?"라고 소개한 2권은 어려운 환경속에서 그 뜻을 함께 하는 동료들과 여러가지 이유로 탐탁치않게 바라보는 사람들의 이도저도 아닌 행태들을 헤쳐나가고 있으나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조직/사회의 한계와 문제에 대해서 날이 선 비판과 포기 중간의 어딘가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세월호와 최근에 있었던 귀순 북한군 병사의 이야기가 여기에서 소개된다.


내가 하는 일은 기업문화라는 분야다. 조직이라는 곳에서만 나타나는 현상들이 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으나 또 이해가 된다. 

곳곳에서 지금까지 내가 경험했던 기업과 조직에서 나타난 모습들을 이 책에서도 만나볼 수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흡사해서 반갑기도 공감이 되기도 했는데,

한편으로는 또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것에 실망감과 한계에 부딪혀있다는 느낌이 왠지 서글펐다.


"중증외상특성화센터 사업은 더는 지속하기 어려워 보였다. 기획재정부의 편익-비용비율분석 산정 이후에 사업은 본격적으로 진행되지 못하고 수면 밑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정책 추진은 마치 유행을 타는 것과 같다. 시작되어 나아갈 때 웬만한 선까지 추진해놓지 않으면 앞으로 더 나아가기 어렵다..담당자가 바뀌면 새로운 부서장은 자기의 '새로운 사업'을 추진한다."


"중증외상 환자들은 수술실 바닥을 흥건하게 적실 만큼 피를 쏟아냈고, 제 몸에서 쏟아버리는 만큼의 많은 피가 필요했다...중증외상 환자 치료를 위해 수혈을 하고 나면 우리는 어디에서도 그 돈을 보전받지 못했다. 그것은 그대로 ABC원가분석에서 내가 발생시킨 심각한 적자요인이 됐다. 회의 자리에서 한 의사가 내게 물었다. 아니 이렇게 확실한 문제가 있으면 저희에게 직접 말씀하시지 왜 이렇게 오래 놔두셨습니까?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속에서 치솟는 불길이 머리끝에 닿았다. 지난 10년 가까이 내가 올린 수많은 자료들과 직접 작성한 '수혈 비용 삭감에 대한 이의신청서'는 전부 쓰레기통에 처박혔단 말인가. 일개 의사의 불만이라도 10년 동안 지속되면 한 번은 귀 기울여줄 만했다. 나의 절박함이 그들에게는 하찮은 모양이었다."


"나는 애초에 대한민국에 외상외과라는 분야가 존재 가능한지 묻고 싶었다. 병원 내의 일부 동료들과 보직자들은 이런 적자를 핑계 삼아 나를 욕했다. 나는 욕을 먹다가 지치면 병원의 윗선을 찾아가 '중증외상센터 국책사업' 추진 중단을 건의했으나, 내 말은 언제나 튕겨져 나갔다. 그들은 이 사업을 스스로 중단하기를 원하지는 않는 듯했다. 참으로 알 수 없었다. 그들은 외상센터를 운영하라고 하면서도 주변의 압박에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어쩌면 욕받이가 되는 것은 내 문제였으므로 그들에게는 심각한 것이 아닐지도 몰랐다."


"심각한 문제는 암덩어리처럼 단번에 조직을 죽이지 않는다. 그것은 천천히 악회되어 조직 전체에 깊숙이 파고들어 마비를 부르고, 마비는 조직을 사망으로 이끈다. 죽어버린 조직은 회생이 불가능하거나 재건하는 데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 책임과 지난함은 '다음' 사람의 몫으로 남겨진다. 문제를 확산시킨 책임자들은 대부분 다른 부서로 전출했거나 일부는 이미 퇴직했으므로, 정작 조직이 쑥대밭이 됐을 때는 책임 소재마저 아득해져 따져 물을 수조차 없다. 그러므로 문제가 있어도 지금 자리한 이들 중 일부는 앞날을 걱정하지 않고 제 잇속을 챙기거나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 그것이 주인의식이 불분명한 조직들의 생리였다."


이외에도 너무나 공감되는 구절들이 많아서 다 소개하기 어렵다. 이국종 교수와 중증외상센터에 대해서 다양한 시각이 존재한다고 본다. 내가 책을 보면서 느낀 것은 우선 쉬운 일을 하려고 하기 보다는 옳다고 믿는 일을 온힘을 다해서 하고 계시다는 것은 틀림없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옳은 일을 믿고 함께 해 줄 동료들을 만나게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정말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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